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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중 카이우스 그라쿠스

독서/플루타르코스 영웅전

by til.cpdm 2023. 5. 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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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표지 이미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표지

로마의 정치인이며 뛰어난 웅변가로 훌륭한 인격으로 민중들에게 추앙받았지만 오랜 정적 오피미우스에게 쫓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카이우스 그라쿠스는 형 티베리우스가 죽은 후 집안에서 조용히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았습니다. 웅변과 전쟁에 필요한 전술등이 그것이었는데 그의 친구 베티우스라는 사람이 고발당했을 때 카이우스가 변호를 하는데 조리 있는 변론과 재치 있는 웅변술에 감탄하며 다른 웅변가들의 연설은 카이우스에 비하면 어린애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조용히 살던 그는 집정관 오레스테스의 재무관으로 사르디니아 섭으로 파견되는데 원로원의 비협조적인 모습에도 병사들과 주민들 모두에게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민중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을 보여주어 그의 형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정적들의 불안을 가중시켰습니다. 이에 원로원은 카이루스를 사르디니아에 계속 붙잡아 놓기 위한 방법으로 사르디니아의 군대만 교체하면서 오레스테스 사령관은 그대로 머물게 하는 명령을 내립니다.

 

여기서 분노한 카이우스는 로마로 돌아오는데 카이우스를 공격하며 법정에 서게 되는데 그는 스스로를 변론하여 무죄로 풀려나게 됩니다. 보통 10년간의 군 복부기간을 자신을 12년간을 지속시켰으며 재무관은 1년 정도 복부 후 귀국이 가능하다고 되어있는데 자신은 3년을 복무시켰고 아무 론 전리품조차 가지고 오지 않은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무죄로 풀려나게 되고 다른 누명으로 그를 고발했을 때도 무죄를 증명하여 풀려나면서 호민관에 출마하게 됩니다.

 

귀족과 부자들은 모두 그를 비난하였지만 이탈리아 곳곳에서는 그에게 투표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4등으로 당선되었으며 그의 정적들을 겨냥하면서 정당한 것으로 보이는 법들을 재정합니다. 

 

식민지를 개척하여 가난한 시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병사에게 군복을 지급하며 17살 이상에게 군무를 지우며, 선거권을 나누고, 곡식가격을 낮추고, 원로원 의원의 권력을 줄이는 것들입니다. 이 법률을 통과시기기 위해 한 행동이 로마의 정치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데 그때까지는 코미티움이라는 민회의 의원석을 향해 연설을 했었지만 시민들을 향해 연설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그 결정을 하는 게 시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시절 호민관을 지내고 있던 리비우스는 원로원과 손을 잡고 카이우스의 세력 혹은 명성을 약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합니다. 원로원은 카이우스가 내는 법률이나 제안들은 기각시키면서, 그와 비슷한 의견을 리비우스가 내면 찬성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원로원의 반감은 약화시키면서 카이우스를 약화시키는데 노력했습니다. 이런 때 루브리우스라는 호민관이 카르타고를 재건하자는 의견을 내고 재비 뽑기로 카이우스가 가게 되는데 리비우스는 카이우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친구인 폴비우스를 공격하여 카이우스의 인기를 줄이게 됩니다. 한편 카이우스는 카르타고의 이름을 유 노니아로 바꾸고 일을 빠르게 추진하여 70일 만에 모든 사업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원로원등 귀족과 부자들의 세력은 오피미우스를 집정관으로 당선시키고 카이우스는 호민관에서 탈락했으며 오피미우스는 카이우스가 행한 조치와 법들을 모두 무력화시키기 시작합니다. 이 법을 폐기하기로 한날 집정관의 수행원인 퀀투스 안틸리우스가 철필에 맞아 사망하였고 다음날 아침 원로원에 안틸리우스의 시체를 실은 들것이 나타나자 이런 사건을 일으킨 반역자들을 처단하겠다고 나서게 되는데 안틸리우 스는 사실 하인정도에 불과한 신분이었기에 그들의 반대자를 추출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함을 시민들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카이우스는 결국 죽임을 당했고 그 일파 모두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체는 강에 던지고 그 죽임을 당한 사람 중에는 풀비우스의 막내아들도 포함되는데 전투가 끝난 후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 화해를 요청하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때 로마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났던 때였을 것입니다. 돈과 권력으로 정의를 탄압할 수 있고 권력은 어떤 것이든 누를 수 있는 시대가 되어있었기에 더 큰 권력과 더 큰 재물을 얻기 위해 움직이는 사회가 되었고 거기에 대한 사회적인 학습으로 인해 사회적인 큰 힘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해야 하는 힘없는 시민들의 모습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현재의 대한민국은 혹은 누군가가 살고 있는 나라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라쿠스 형제는 좀 더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너무 급하게 행동하려 하면 그 반발도 강하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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